카메라 앞에서 되살아나는 풍경 하나

도시의 풍경은 늘 빠르게 바뀌지만, 오래된 담장에 기대어 있던 햇살의 각도는 이상하리만큼 그대로였다. 며칠 전, 촬영 장소를 물색하러 서울 변두리 한 골목을 걷다가, 낡은 기와지붕 아래 걸린 풍경 소리에 멈춰 섰다. 그 순간,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. ‘지금 이 소리는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기록될 수 있을까?’
영상을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다. 처음엔 멋진 구도나 카메라 워크에 매료됐고, 어느새 이야기를 담는 일에 빠졌다.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보다 ‘의미’가 더 중요해졌다.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보다, 왜 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 셈이다.
특히 전통적인 소재를 다룰 때는 늘 조심스럽다.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, 지금의 시선으로 그것을 어떻게 살아 있게 만들 것인가가 더 중요하니까. 그래서 요즘은 촬영 전 마을 주민이나 장인을 찾아가 긴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.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도, 찻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어느새 한 사람의 시간이 펼쳐진다.
누군가는 왜 굳이 이런 영상을 만드는지 묻기도 한다. 조회수도 높지 않고, 협찬도 없다. 하지만 누군가는 이 기록을 통해 오래전 자기 할머니가 쓰던 방앗간 소리를 떠올리기도 한다. 그런 댓글 하나에 꽤 오래 가슴이 먹먹해진다.
irokofilms.com은 그런 작은 기억들을 꺼내는 영상들을 꾸준히 만들어간다. 화려하진 않아도, 진심이 닿는 장면을 담고 싶다. 필름은 사라질지 몰라도, 그 안의 마음은 남을 테니까.
– 이서진 감독